영상
담당부서 : 대외협력팀 02-765-8736
본 저작물은 "공공누리 4유형(출처표시-상업적 이용금지-변경금지)"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.
[생명나눔 감동 이야기_기증자 장희재 님 편]
2024-04-08
유능한 안무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_[생명나눔 감동 이야기_기증자 장희재 님 편]
<영상 자막>
0.00~0.09
네 분이 살아있는 것처럼 살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할 거라고 그래서 제가 그때 이제 마음의 위로를 많이 받았죠.
0.13~0.15
생명나눔 감동 이야기
유능한 안무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 장희재 님의 생명나눔 이야기
0.17~0.21
(자막) 전국무용제에서 금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능한 안무가였던 장희재 님은 갑작스럽게 쓰러져 뇌사 상태가 되었습니다!!
0.23~0.27
(자막)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재능이 넘쳤던 안무가 장희재 님, 마지막 순간에도 세상에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기고 떠났습니다!!
0.28~0.33
(자막) 학업과 일, 육아를 병행하며 항상 최선을 다하던 기증자 장희재 님의 생명나눔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!!
0.34~0.37
(자막) 1남 2녀 중 가장 순하고 착했던 사랑스러운 딸을 추억하며..
0.38~0.50
우리 딸을 저하고 성격이 많이 비슷해요. 다른 사람 앞에 이렇게 잘 나서서 리드하고 그런 걸 참 잘하는 딸이에요.
0.50~0.59
3형제 중에 가운데 껴서 조금 어.. 언니한테 치이고 밑에 동생한테, 남동생한테 치이고.
0.59~1.03
그래도 굉장히 순하고 착했어요. 세 명 중에 제일 순했던 것 같아요.
1.04~1.10
저희는 네 살 차이고요. 제가 5살 때 우리 희재가 태어났어요.
1.11~1.27
동생이 없어서 엄마한테 어릴 때 슈퍼에 가면 나도 동생 하나 사 오라고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희재가 태어났을 때도 머리가 복슬복슬하고 통통해서 정말 너무 예쁘고 그때 그 순간이 기억이 납니다.
1.27~1.40
초등학교 다닐 때도 영재반에서, 계속 영재반에서 있었고 얘가 무용을 하게 되었는데 언니가 무용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용을 시작하게 됐죠.
1.40~1.44
(자막)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춤을 추던 재능 넘치는 안무가 장희재 님을 기억하며..
1.44~1.47
장희재 언니의 후배 김선주입니다.
1.47~1.49
후배 정진아라고 합니다.
1.50~1.54
모든 사람들에게 배우려고 항상 하는 선배였어요.
1.54~2.03
자기가 모르는 게 있으면 이렇게 서슴지 않고 후배들한테도 가서, “진아야 이거 어ᄄᅠᇂ게 하는 거야? 나좀 바줘 봐.” 늘 이런 사람이었거든요.
2.04~2.07
편하게 항상 저희랑 웃으면서 연습하고 그랬었어요.
2.07~2.13
유일하게 제가 학교 연습실 가면 치댈 수 있는 사람이 희재 선생님이 유일했던 것 같아요.
2.14~2.26
정말 춤을 좋아했어요. 대학교 4년 시절에는 그..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숨도 안 쉬고 후배들과 동생들과 같이 작업하고 했던..
2.27~2.38
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대전을 빛낸 안무가상, 현대무용단 회장, 메타댄스 회장 등 여러 가지 상을 많이 받았었는데
2.39~2.50
무대에서 진짜 빛나고 싶어 했거든요. 그런데 그때, 대전무용제에서 1위를 해서 전국무용제를 거쳐서 금상을 받고 출연했던 무용수들이
2.51~3.09
남자 무용수가 최우수 연기상도 받았고 그리고 여자 무용수가 우수 연기상 이렇게 받았어요. 한 작품에서 여러 상이 나오는 게 흔치 않거든요. 그래서 그만큼 언니가 되게 공들였고 무용수들을 다 잘 아울러서 거기에 나가서 이제 상을 받게 된 거죠.
3.10~3.13
(자막) 가족들이 함께한 주말 저녁, 너무 빠르게 찾아온 이별의 순간..
3.14~3.28
3월 3일이 생일이었는데 같이 저녁밥을 먹고 그랬었는데, 사고가 난 날은 딱 일주일이 지난 금요일 밤이었으니까 그..3월 8일 밤으로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.
3.29~3.40
그날 새벽에 한 7시쯤 우리 쌍둥이가 거실로 쫓아 나와서 할머니를 부르면서 엄마가 숨을 안 쉰다고 애들이 난리가 난 거예요.
3.41~3.45
그래서 제가 이렇게 만져보니까 심정지 상태더라고요.
3.45~3.50
그래서 제가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119 와서 일단 병원으로 이송됐죠.
3.51~3.55
(자막) 갑작스러운 이별 속에서도 선한 딸을 생각하며 기증에 동의하다..
3.56~4.01
제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투석을 하시고 가셨어요.
4.02~4.06
그래서 투석이라는 게 너무 힘든 걸 제가 너무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에
4.07~4.21
평소에 봉사활동도 다녔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했던 것도 있고 마지막 숨이 멎는 그 순간에도 의사가 저한테 20분만 해보고 마무리하겠다고 했었을 때 엄청 제가 희재 이름을 불렀어요.
4.22~4.34
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희재가 자가호흡을 시작했고 그러면서 장기기증ᄁᆞ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게 얘가 원하는 일이 이거구나.
4.34~4.43
주치의가 또 물어보더라고요. 아버님 그 생각 여전히 갖고 계시냐고 그래서 나는 장기기증을 했으면 좋겠다.
4.44~4.55
그래서 이제 3월 15이 12시 17분으로 사망 선고가 되고 콩팥 2개, 간, 폐 이렇게 장기기증을 했어요.
4.55~5.12
그리고 우리 (한국장기조직)기증원의 코디네이터도 어제도 위로 전화 오고 하는데, 아버님 네 분이 살아있는 것처럼 살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할 거라고.. 그래서 제가 그때 마음의 위로를 많이 받았죠.
5.13~5.22
우리 희재가 건강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살린다는 게 저는 그냥 딸을 잃었다는 슬픔보다도 그게 더 마음에 좋았어요.
5.22~5.27
(자막) 사랑하는 딸이자 동생 그리고 동료, 기증자 장희재 님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..
5.27~5.35
그냥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 사랑하고 내가 네 언니여서 너무 행복했고 더 많은 걸 못해줘서 미안하고.
5.35~5.45
같이 있을 때 늘 우리 얘기만 들어주고 배려만 해주다가 자기 말은 못하고 참기만 하다가 간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해요.
5.45~5.54
하늘이든 바다든 훨훨 날아서 헤엄치면서 진짜 춤추면서 잘 지내. 사랑해 언니.
5.55~5.58
엄마 매일 아침 네 이름을 몇 번씩 불러봐.
5.58~6.06
너무 보고 싶다. 자주 엄마 꿈 속에 나타나. 그러면 엄마가 애들 얘기해 줄게. 희재야 편하게 쉬어라.
6.07~6.12
(자막) 재능있는 안무가이면서 멋진 아내, 엄마로 멋진 삶을 산 그녀, 슬픈 이별 속 누군가를 위한 기증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.
6.14~6.18
(자막) 삶의 끝에서 전해주신 새로운 희망을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.
6.20~6.24
(자막) 딸을 떠나보내던 날 밤, 아버지가 쓴 마지막 편지..
6.24~6.44
사랑하는 딸 희재야 너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그립다. 너는 하늘나라 가면서도 새 새명을 살리고 얼마나 선한 일들을 하고 가니. 잘 가라. 내 딸 희재야. 2024년 3월 16일 새벽에 못난 아빠가.
6.45~6.48
누군가의 끝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작
From the end to the start
6.50~6.54
KODA 한국장기조직기증원